쿠웨이트 사막과 양떼, 철탑

Desert and Steel Tower, Conflict and Harmony in Kuwait
쿠웨이트 사막과 철탑, 대립과 조화

사진가 윤정빈이 쿠웨이트 사막에 서 있는 철탑을 찾아갔다. 척박한 자연 속에 기념비처럼 존재하는 풍경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과 조화를 탐색한다. 

쿠웨이트에서 1년간 근무하게 되었을 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철탑을 처음 마주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풍경 속에서 그 철탑들이 단순히 산업화 현장의 구조물처럼 느껴졌다. 그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사막과 인간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임을 깨닫게 되었다. 철탑은 인간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연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 같았다. 이때의 경험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수년 후, 2023 후지필름 GFX Grant Award의 지원을 받아 다시 쿠웨이트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는데, 과거에 잠깐씩 촬영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면서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더 깊이 탐구할 수 있었다.
쿠웨이트 사막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공간이다. 바람에 깎여 형체를 잃어가는 땅, 죽은 동물의 흔적, 버려진 쓰레기 더미는 사막의 척박함과 솔직함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철탑은 인간의 흔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상징처럼 보인다. 사막과 철탑은 대조적인 존재 같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어우러진다. 마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인공적인 기념비처럼, 메마른 환경 속에서 철탑은 서 있다. 철탑 사이를 지나는 낙타 떼, 버려진 자동차 부품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끝없는 하늘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철탑은 산업 구조물 이상의 존재다. 이들은 인간의 끈질긴 의지와 생존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공물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나는 이 풍경이 인간의 흔적과 자연의 힘이 만나는 교차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촬영에서는 철탑 주변에만 머물지 않고, 철탑 주위로 난 길을 따라 이동하며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섰다. 그 길은 구조물의 배치로 만들어진 길이자,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흔적이기도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여건상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장소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탑 아래에 널브러진 낡은 기계 부품, 쓰레기 속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 철탑 뒤로 저무는 사막의 노을은 이곳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히 철탑을 찍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탑과 사막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촬영한 사진은 일본 도쿄와 오사카 그리고 한국 서울에서 전시됐다. 사막이라는 거대한 자연과 그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철탑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자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간들이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도록 말이다.